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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

 

 

언어가 있기 전 제스처와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떨림과 설렘, 그리움과 두려움, 갈망은 쓰여지기 이전에 허밍처럼 하늘을 울리고, 들판에 퍼졌다. 하나의 언어로 소통했던 인류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한 결과라고 성경에서는 기록한다. 그런데 오늘 10개 언어로 불려진 하나의 노래를 들으며 바벨탑 이전의 세계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이해의 걱정을 떠난 세계, 마음을 먼저 적시고 위로하는 최초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영어, 라틴어까지 총 10개 언어로 번역되고 녹음되었다. 다양한 국적의 성악가들이 자신이 아는 언어로 ‘온전한 내맡김’의 행복을 노래하는데 처음에는 가수들의 상이한 발성이나 낯선 언어가 귀에 먼저 들어오지만 그 차이는 점점 사소한 것이 된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악보는 마디로 구획되고 마디는 길이를 나타내는 음표로 기록되는 자체의 형식이라는 게 있다. 더욱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는 제각각 다른 길이로 번역된 10개의 외국어 가사를 8분여의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도 있게 녹여내야 하는 난제까지 안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10개의 곡이 차곡차곡 쌓였고, 지금 그 음악을 들으며 전율하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가사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전반부는 하느님이 하신 일과 그 분의 인격을, 후반부는 그런 주님께 나를 맡기오니 인도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다. 두 파트의 가사는 각각 두 번씩 반복되면서 변주된다. 음악은 완만하고 잔잔하게 시작되어 서서히 고조되었다가 절정에 이른 후 다시 고요함에 젖는 여정이다. 하지만 끝내 서정성을 잃지 않는데 그것은 모든 힘을 모아 두었다가 조금씩조금씩 ‘제어’하며 감정을 풀어놓기 때문이다. 많은 생활성가, 혹은 CCM이 대중과의 친화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대중가요 어법을 빌리곤 한다. 반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는 느린 클래식 선율에 단순한 가사, 흡사 기도하는 것 같은 음성으로 섣부른 낭만이나 감상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게 특징이다.

 

전곡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점진적인 변화가 있다. 하느님에 대한 조용한 찬양과 고백, 그리고 스스로의 다짐이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결연한 확신으로 유장하게 펼쳐지는데 8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귀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이 곡이 가진 미덕이자 힘일 것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는 감각적이다. 성가의 품격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멜로디는 누구라도 무장해제할 만큼 매혹적이다. 가사를 거두어내면 어느 시적인 영화음악 못지 않고, 어느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못지 않다. 작곡가도 이 곡이 교회 음악이라는 한정된 울타리 안에서 불려지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눈물의 정화로 승화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곡은 하느님에 대한 연서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만큼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도 없을 터이다. 이해욱 신부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기꺼이 제물로 내놓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아야 했던 마리아의 눈물, 그리고 예수가 실천한, 내어드리는 삶 자체를 묵상하며 작사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클래식은 교회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가사 전달이 중요하여 한 성부로만 불려졌던 그레고리안 성가는 하모니를 이루는 다성음악으로, 점차 가사보다는 화성이나 멜로디가 부각되는 길로 발전하게 된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가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실상 놀랍지 않은 것은 클래식 전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과 분위기를 정확히 전달하려 애쓰면서도 각 언어의 악센트를 살린 자연스러움, 음악의 건축적 구성까지 잊지 않았다.

 

작곡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클라리넷으로, 심장을 피아노로, 천사를 플루트로 표현한다. 깨끗한 피아노 선율은 시종일관 시냇물처럼 흐르며 실제로도 음악 전체를 지지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이 곡의 숨은 공신이라 할 수 있다. 클라리넷은 하나님의 음성을 번역해 들려준다. 목관악기 가운데 표현 영역이 가장 넓은 클라리넷답게 그윽하고 중후한 목소리, 맑고 포근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특히 클라리넷과 피아노 듀엣 부분이 압권인데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천사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메신저인데, 플루트가 연기했다. 피아노가 곡 전체를 받쳐주고, 클라리넷이 주제 선율을 노래한다면 플루트는 천사의 날갯짓처럼 날아오르며 화답하고 반향한다. 현악 앙상블의 균형감 있는 연주도 적절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는 전통적인 성가와도 다르고, 요즘의 생활 성가 문법에도 매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현대적인 성가의 가능성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내맡김의 가치를 노래하면서도 강요나 감상에 치우치는 법이 없고, 비우고 비운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간절한 기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맡긴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믿음이며, 우리 각자에게는 안식의 길이다. 불안과 외로움이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 내가 그분의 위로와 훈풍 없이 안녕할 수 있을까… 그 고백이자 무릎꿇음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협회 세실(대표 김혜영)의 주관으로 2년 넘게 진행되었다. 이해욱 신부의 가사, 김효근 교수의 작곡,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이 한마음으로 녹음에 참여했고 음반 수익은 전액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된다.

 

2014년 7월

곡평론: 음악애호가 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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